[푸드]죽장연_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분양 받는 프리미엄 전통장







천 일 동안, 열어보지 않을 용기 :

빈티지로 갈아입은 전통장




      정연태

  죽장연 CEO


글: 김시현 PDㅣ사진: 오상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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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




까다로운 소비자는 만국 공통

 

낯선 사람들에게 낯선 음식을 먹인다는 건, 아주 옛날로 치면 먹어본 적 없는 열매 같은 것을 죽음을 무릅쓰고 시도해보라는 것이겠죠?


SNS가 발달하고, 모든 것들이 공유되는 시대에도 특히 음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워해요. 밈(Meme)이나 챌린지(Challenge)와 같은 형식으로 퍼질 수는 있지만, 실제로 맛과 건강이 검증되지 않으면 쉽게 유통되기도 어려워요. 각 국가 간에 규제도 심하고요.


하지만, 이런 유행과는 달리 외국의 유명 셰프들이 그 진가를 먼저 알아본 것이 있어요. 바로 우리 전통장인데요, 장독대를 통째 분양 받고, 필요할 때마다 국제항공택배로 가져간다고 해요.


외국의 미슐랭스타(Michelin stars) 셰프들이 먼저 반한 프리미엄 전통장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해볼게요.


분양 중인 장독들(죽장연 제공)



STORY 01



전통방식, 나쁜 기교는 없다


사람들은 자연을 좋아하지요. 동물적인 본능입니다. 또 사람들은 전통을 좋아하지요. 인간적인 철학입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성도 더 많이 들어가야 하는 데 말이죠. 이번에 만난 죽장연(竹長然)의 정연태 대표도 그러했어요.


"자연과 세월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습니다."


죽장면 상사리의 자연(죽장연 제공)


공장에서 생산되는 양조장과 죽장연의 전통장과의 차이를 알려 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답을 했어요. 살짝 당황해서 그만 주변을 둘러보는 데, 상사리 골짜기와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착해 보이는 주민들이 보였어요.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느낌이 왔어요.


"이해하기 쉽게 와인(wine)으로 비교를 해드릴게요. 프랑스 보르고뉴(Bourgogne)와 보르도(Bordeaux) 지방에서는 매년 전통 있는 그 지역의 자연환경, 즉 테루아(terroir)와 그들만의 노하우를 통한 와인을 선보이며 전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프랑스 정부가 와인을 많이 팔기 위하여, 파리에 와인 제조 공장을 짓고 그 생산 기간을 줄이려고 색이 연하고 숙성이 안된 와인에 색소를 가미하고 또 보존 기간을 늘리기 위해 화학 첨가물들을 마구 넣고, 거기다 꽃향, 바닐라향, 나뭇가지향 등을 첨가한 후 대량 생산하여 값싸게 공급하라고 합니다. 이런 와인과 전통 와인 중에 어떤 와인을 드시겠습니까?




아버지가 이어준 인연


정 대표는 미국 남일리노이주립대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일본 게이오대학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오리온그룹의 (주)롸이즈온 마켓팅 총괄본부장을 역임했었는데요, 트렌디의 최선봉에서 어떻게 전통장으로 뛰어들게 되었는 지 궁금해졌어요.


정 대표의 아버지는 포항의 한 사업장 내의 각종 운송을 담당하던 중소기업의 대표였어요. 1999년 ‘1사 1촌’으로 죽장면 상사리와 결연을 맺으면서, 농번기에는 일손을 보태고, 각종 농기계를 무상 수리해 줬다고 해요. (요즘 이야기로 ESG* 경영이겠네요.)


*ESG: 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는 기업이나 비즈니스에 대한 투자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세 가지 핵심 요소이다. (위키피디아)


"이런 것들이 고마웠는지, 주민들이 집집마다 장을 담글 때 맛보라고 가져다 주더군요. 그런데 이게 너무 맛있는 거죠, 혼자 먹기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고 한 것이 지금의 죽장연이 되었어요."


죽장면 상사리 주민분들(죽장연 제공)

      



STORY 02



하나도 똑같지 않은

5,000개의 작품


죽장연에 들어서면 정말 엄청난 숫자의 장독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요.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 되었죠.


"그냥 장독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옹기(甕器)에요, 무형 문화재 이무남 선생님이 만들어 주셨죠. 현재 2,500독의 장독이 익어가고 있는 데, 향후 5,000독까지 운영할 예정이에요."


관련 업계에서는 관리와 비용 측면을 따져 스테인레스(Stainless)나 플라스틱(Plastic) 같은 곳에 보관하는 경우도 많은데, 굳이 비싼 장독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장독 역시 우리 조상들의 지혜의 산물이에요. 좋은 발효를 위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더러, 흙이라는 자연으로 빚은 이것은 발효 때 생겨난 나쁜 박테리아는 밖으로 내보내고, 외부의 박테리아는 내부로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놀라운 역할을 해요."


살아 숨 쉬는 옹기들(죽장연 제공)


"장독대에서 자연 숙성을 하기 때문에 같은 프로세스로 장을 담았어도 매년 날씨 변화에 따른 영향으로 조금씩 맛의 차이가 나죠. 이것도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오묘한 작품이 아닐까 해요."


 

 

STORY 03



3년을 거뜬히 함께하는 사람들


전통장은 예전부터 그 지역의 환경적인 특성과 집집마다 전해 내려오는 비법 같은 것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죽장연만의 비법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집집마다 장을 담그던 시절에는 특별히 맛나게 하기 위해 그 지역의 특산물을 함께 넣기도 하고 첨가물을 넣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집에 몇 독 안 되는 장을 담글 때 가능한 일이었죠. 매년 몇 백 독의 장을 담그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비법은 정직하게 좋은 원료로 담는 것이고요, 또한 철저한 관리 프로세스(Process)에요."


5월에 주민들이 직접 콩을 심고, 11월에 수확을 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된다고 해요. 그 다음으로 콩 세척, 무쇠 가마솥에서 콩을 삶고 뜸을 들인 후 으깨고 뭉쳐서 메주 만들기, 1차 발효(건조, 친환경 짚으로 엮어 각시에 매달기), 2차 발효(황토방에서 메주에 짚을 덮어주기), 장 담그기, 장 가르기, 숙성(최소 3년)의 과정을 거치게 돼요. 


"우리 조상들의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와인의 테루아와 같이 자연이 준 가장 좋은 환경에서 장을 숙성하고, 그 방법밖에 모르는 죽장 상사리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정성껏 장을 담그고 있어요."


무쇠 가마솥에서 참나무 장작을 사용하여 콩 삶는 과정(죽장연 제공)


죽장연이라는 전통장이 탄생할 때까지 무려 3년이라는 모든 기간과 과정을 그렇게 죽장 마을 주민들과 함께한다고 해요. 또한 매년 담그는 장을 와인과 같이 년도 별로 빈티지화하여 맛의 차별화를 두고 있고요.



 

STORY 04



Welcome, CNN


사실 죽장연을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사람은 '후니 킴(Hooni Kim) 셰프'였다고 해요. 한식 레스토랑 최초의 미슐랭 스타이고,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오너 셰프의 열망을 가지게 한 한인 셰프의 레전드죠. 


"무작정 우리가 정성껏 만든 장이니 한 번 맛을 좀 봐달라고 샘플과 이메일을 보냈어요. 며칠 후에 답장이 왔는데 자신이 찾아 헤매던 바로 그 된장 맛이라며 정말 맛있다는 반응을 보내왔어요. 나중에 죽장연이 있는 상사리까지 직접 찾아왔는데 그렇게 파트너쉽까지 맺게 되었어요."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을 만든다고 했던가요? 이번에는 후니 셰프가 CNN의 취재팀 20명을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고. 'Nomad with Carlton McCoy'라는 시리즈에 '죽장연 편'을 찍기 위해서였다고 하는 데요, 공동출연자(Carlton McCoy와 김경문 마스터소믈리에)들과 함께 죽장연을 강력 추천했다고 해요.

 

오른쪽부터 정연태 대표, Carlton McCoy(죽장연 제공)




STORY 05



오래된 새 것

오뚜기 빠개장면


"전통장으로 새롭게 시도한 것으로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오뚜기와 콜라보한 '빠개장면'이 있고요, 또 설성목장과는 설성목장의 한우를 이용한 '한우볶음 고추장'이 젊은 고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어요. 2022년에는 빵에도 발라 먹을 수 있는 '된장과 고추장 스프레드'도 출시하였고요."


죽장연은 전통을 계승하고 잘 지켜나가고 있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기만 하지는 않아요. 오래된 것을 지키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옷을 입고 소통하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매년 봄 시즌 한정으로 '오뚜기'와 콜라보 중인 '빠개장면'이 바로 그 증거에요. 특히 빠개장*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텐데, 새로운 맛과 풍미(flavour)를 즐길 수 있게 해준 거죠.


*빠개장: 장을 담근 지 15일 정도 지나면 먹을 수 있는 속성 장으로 메주를 빠개어 가루로 만들어 담갔다고 하여 지역에 따라 ‘빠개장’ 또는 ‘가루장’이라고도 부른다. (두산백과) 특히 죽장연의 빠개장은 봄에 새로 담근 숙성이 덜 된 장에 보리쌀을 삶아 넣고 고추씨를 넣어서 만든 햇장이다.


오뚜기 빠개장면(사진: 오뚜기mall)




STORY 06



백종원x정용진보다 빨랐던

BLACK 된장


죽장연의 블랙 된장(서리태된장)이 탄생 된 훈훈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는데요, 2019년 백종원x정용진 못난이 감자 수매보다 훨씬 앞서서 있었던 일인 듯합니다.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2014년 서울 다녀오던 기차에서 안타까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강원도 최북단 고성군 토성면 마을에 대한 소식이었어요. 예전엔 금강산 관광 특수를 누려 마을 수익이 늘고 그 자금으로 매년 노인들을 위한 잔치를 하였는데, 금강산 관광이 두절된 후 수익이 끊겨 어려움을 겪다가 재원 마련으로 유기농 서리태콩을 직접 심고 수확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러나 판로가 여의치 않은 데다가, 또 마을 이장님은 수확 중 탈곡기에 손이 절단되는 사고까지 겪었는데 콩을 팔지 못한다는 거였습니다."


"서리태콩이 총2톤이라 하더군요. 기사를 보고 바로 고성 토성면에 연락을 하여 콩을 전부 사겠다고 했어요. 결국 그 중 반인 1톤을 죽장연이 사들였어요."(나머지 반은 기사를 본 여러 독자분들이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셨다해요.) 그렇게 그해 겨울 처음으로 서리태콩으로 서리태된장을 담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토성면과 죽장 상사리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었고, 매년 서리태콩을 사오게 되었습니다."


블랙된장(죽장연 제공)    


현재는 고성군 토성면의 서리태 수확은 중단된 상태라고 해요. 농사를 지을 분들이 대부분 노인이 되어 아쉽게도 더 이상의 수확은 어렵다고. 때문에 현재 판매되는 블랙 된장은 2017년 강원도 토성에서 마지막 재배된 서리태된장이에요. 시판되는 서리태된장 중에 함유량도 제일 높다고 하니, 저도 늦기 전에 얼른 맛봐야겠어요.






EPILO_

GUE




사라지지 않을 용기


아무것도 모르던 도시남이

첩첩산중의 죽장으로 내려왔었죠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때론 여기저기서 상도 받고

전통장을 잘 만들고 맥을 이어가 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듣게 되네요


우리는 주변에 항상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요


때로는 된장녀, 된장남처럼

좋지 않은 시대어와 함께 폄하 당하기도 하죠


그래도 2,000년을 지켜왔어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어야 해요 


사라지지 않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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